충정공 불당 설치 불가 상소

 

세종 121권, 30년( 1448 무진 / 명 정통(正統) 13년) 8월 2일 을묘

 

정창손이 불당 설치 불가를 간절히 상소하다

집현전(集賢殿) 부제학 정창손(鄭昌孫) 등이 상소하기를,

“신 등이 불당의 일로 여러 번 천총(天聰)을 더럽혔으나 유윤(兪允)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의리상 직책에 있기 어려워서 두 번이나 파하여 물러가기를 빌었는데, 출사(出仕)를 명령하시기에, 신 등이 황공함이 절실하여 부지런히 직사에 나왔으나, 마음에 분격(憤激)을 품어 스스로 마지 못하고, 또 천총을 더럽혔음에도 아직 윤허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신 등이 전지(傳旨)를 본 이후로 지금까지 14일인데, 천만 번 생각하고 밤낮으로 헤아려 보아도 전하의 이 거조가 한 가지도 가한 것이 있음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신 등은 생각하기를 사(邪)와 정(正)은 갈마들면서 소장(消長)하고, 치(治)와 난(亂)은 서로 의복(倚伏)이 되니, 예로부터 천하 국가가 사정(邪正)을 아울러 쓰고서 능히 길이 다스리고 오래 편안한 것은 있지 않습니다.

 

인군이 더불어 이것을 같이하는 자는 공경(公卿)·백집사(百執事)인데, 지금 전하가 공경·백집사의 정직한 말을 거절하고 반드시 이 사도(邪道)를 일으키고서 말려고 하니, 전하가 장차 중들로 더불어 함께 국가를 다스리고자 하시는 것입니까. 전일에 전하께서 신 등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 일이 그렇게 큰지를 알지 못한다.’ 하시었으니, 전하의 이 말씀이 국가의 복이 아닌가 하옵니다.

《서전(書傳)》에 말하기를, ‘네가 부덕하더라도 그 조종을 크게 떨어뜨리지 말라.’ 하였으니, 가령 이 일이 실로 작은 일이 되더라도 참으로 그 그른 것을 안다면 하지 않아야 할 터인데, 하물며, 불씨의 화가 나라를 패하는 데에 이르니, 일이 이보다 더 큰 것이 어디 있습니까. 전하께서는 비록 작은 일이라 하시나, 신 등은 큰 일이라고 생각하며, 전하께서는 비록 단연코 하려고 하시나, 신 등은 단연코 불가하다 하여 죽기로 다투는 것입니다.

 

만일 신 등의 말을 옳다고 생각하신다면 급히 이 일을 정지하시고, 만일 그르다고 생각하신다면 신 등의 망령되게 말한 죄를 다스리소서. 신 등이 차마 예융(裔戎)의 추한 무리가 궁성 옆에 있어서 성명한 정치를 더럽히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만일 끝내 듣지 않더라도 너희들로 하여금 집현전에 있게 할 수 없느냐. 너희들의 말이 어찌 그리 심하냐.”

하였다.

 

창손 등이 대답하기를,

“가고 머무르는 것은 오직 전하의 명령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반드시 청허(聽許)하셔야 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너희들을 가게 하는 것도 아니요, 또한 머물게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너희들은 모두 정도(正道)로 행하는 사람들이다. 지금 너희의 말을 만일 어진 임금이라면 마땅히 좇겠지마는, 나는 어질지 못하니 끝내 반드시 따르지 못할 것이다.

 

이와 같다면 내가 너희들의 임금이 되기에 어찌 부끄러움이 없겠으며, 너희들이 나를 임금으로 삼는 데에도 어찌 부끄러움이 없겠느냐. 이것은 내가 일찍이 너희들과 더불어 말한 것이다. 내가 비록 어질지 못한 임금이라도 너희들이 말하기를 죽기로 다투겠다 하여 맹세하는 것 같이 하니, 나라가 비록 위태하고 어지럽더라도 신하가 모두 죽을 수 있느냐. 내가 듣지 않을 것이 정녕(丁寧)한데, 끝내는 어떻게 처할 것인가. 군신 사이에는 도가 합하지 않으면 처하기가 심히 어려운 것이다. 내 뜻은 여기에 그친다.”

하였다.

 

창손(昌孫) 등이 대답하기를,

“신하가 어떻게 임금에게 맹세할 수가 있습니까. 원래 이런 도리가 없습니다. 신의 아뢴 것은 다만 청을 얻고자 하는 것 뿐입니다. 옛사람이 글을 올리는 데에 매사(昧死)니, 부월(鈇鉞)의 배임을 피하지 않는다느니 하는 말이 있는데, 이것이 어찌 다 죽고자 하는 것입니까. 신 등의 뜻도 다른 것이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알았다.”

하였다.

 

【영인본】 5 책 93 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