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인상서문(丙寅上書文)

 

상서왈신어전일앙진조포청종상제금복승승지신조석친전 상지불윤소청심증경구강지소조위독천위재

上書曰臣於前日仰陳早抱請終喪制今伏承承旨臣曹錫親傳 上旨不允所請深增驚懼岡知所措胃瀆天威再

진곤핍복망성자복념신용우우졸유이문묵소기류몽 렬성지지우치위통현증무재효세재계유정난지초특

陳悃愊伏望聖慈伏念臣庸遇迂拙惟以文墨少技謬蒙 列聖之知遇致位通顯曾無才效歲在癸酉靖難之初特

몽 전하지천발탁신위전조지장자시감격사효미노급지 전하용비지추사호공신탁치랑묘총악유애 전

蒙 殿下之薦拔擢臣爲銓曹之長自是感激思効微勞及至 殿下龍飛之秋賜號功臣擢置廊廟寵渥踰涯 殿

하난익지사호천강극서갈노둔앙답생성략무사호지보부앙유괴고인운무덕이부귀위지불상신덕박위중성

下卵翼之思昊天岡極庶竭駑鈍仰答生成略無絲毫之補俯仰有愧古人云無德而富貴謂之不祥臣德薄位重盛

만이극천강혹벌화연자모반호막급통절심장방거점여기종상제불의인강 륜음특령즉길복장태반지견근

滿已極天降酷罰禍延慈母攀呼莫及痛切心腸方居苫廬冀終喪制不意忍降 綸音特令卽吉復長台班至遣近

신훈유정녕 성은지악신개불욕흠승 성훈석복취직이효견마지노재단념자생삼년연후면어부모지회시

臣訓諭丁寧 聖恩至渥臣豈不欲欽承 聖訓釋服就職以效犬馬之勞哉但念子生三年然後免於父母之懷是

이성인제위삼년지상수불초자사지기이급지신평생신혼지봉감지지양유소미진다궐자직금약경석쇠마모

以聖人制爲三年之喪雖不肖者使之企而及之臣平生晨昏之奉甘旨之養有所未盡多闕子職今若徑釋衰麻冒

애취직칙대절이휴의장하이비찬 성화호신우복문 전지근당순행사지류수경성신충절금황석한고조지

哀就職則大節已虧矣將何以裨贊 聖化乎臣又伏聞 傳旨近當巡幸使之留守京城臣充切衿惶昔漢高祖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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討陳豨也留蕭何鎭開中唐太宗之伐高麗也命房玄齡守長安宋眞宗之伐澶淵也使王旦守汴京此三人者皆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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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之宏材碩德者也如臣之淺知暗識豈能堪此大任哉臣若應 命苟有絲毫裨益捐軀殞命所不敢辭今臣之出

무익치화유누풍교반복사지무일이가복망 전하부순애간추수권전허령종제효리행심 어서왈여지어경

無益治化有累風敎反復思之無一而可伏望 殿下俯循哀懇追收權典許令終制孝理幸甚 御書曰予之於卿

유좌우수대의여차불필다언약불득칙여장율백관친왕기복

猶左右手大義如此不必多言若不得則予將率百官親往起復

 

12일병인(丙寅) 정 창손(鄭昌孫)이 상서(上書)하기를,

"신이 전일에 마음 속에 품은 바를 우러러 진술하여 상제(喪制)를 마칠 것을 청하였는데, 지금 승지(承旨) 신(臣) 조석문(曺錫文)이 친히 성상의 교지(敎旨)를 전하는 것을 엎드려 받으니, 청(請)한 바를 윤허하지 않으셨으므로 더욱 놀랍고 두려워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천위(天威)를 무릅쓰고 간절한 마음을 다시 진술하며 엎드려 성상의 자혜(慈惠)를 바랍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신은 용우(庸愚)․우졸(迂拙)한데, 다만 문묵(文墨)의 조그마한 재주로 그릇되게 열성(列聖)의 지우(知遇)를 입어 관위(官位)가 통현(通顯)에 이르렀으나, 일찌기 재우의 재효(才效)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계유년(癸酉年) 정난(靖難) 초에 특별히 전하의 천발(薦拔)을 입어, 신이 전조(銓曹)의 장(長)으로 탁용(擢用)되었으니 스스로 감격하여 미로(微勞)를 다할 것을 생각하였는데, 전하께서 왕위에 오르실 때에 이르러 공신(功臣)의 호(號)를 내려 주시고 낭묘(廊廟)에 발탁하여 주셨으니, 총애(寵愛)가 우악(優渥)하여 분수에 넘치고, 전하의 난익지은(卵翼之恩)이 하늘같이 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노둔(駑鈍)한 재주를 다하여 생성(生成)의 은혜에 보답코자 하였는데, 사호(絲毫)의 도움도 전연 없으니, 하늘을 우러러 보나 세상을 굽어보나 부끄러울 뿐입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덕(德)이 없이 부(富)하고 귀(貴)한 것을 「불상(不祥)」이라 이른다.' 고 하였습니다. '신은 덕이 없고 벼슬이 중(重)하여, 「불상(不祥)이」 성만(盛滿)하기가 이미 극(極)에 달하였으므로 하늘이 혹심(酷甚)한 벌(罰)을 내려 화(禍)가 어머님께 미쳐서 슬픔(攀呼)이 이를 데 없고 애통(哀痛)함이 애(心腸)를 끊는 것 같습니다.

 

바야흐로 점려(苫廬)에 거쳐하여 상제(喪制)를 마치려고 하였는데, 뜻하지 않게 윤음(綸音)을 갑자기 내리시어, 특별히 길복(吉服)을 입게 하시고 다시 태반(台班)의 장(長)으로 삼으시어, 근신(近臣)을 보내셔서 훈유(訓諭)하시기를 정녕(丁寧)하게 하심에 이르렀으니, 성은(聖恩)이 지극히 우악(優渥)하십니다. 신이 어찌 성훈(聖訓)을 받들어 상복(喪服)을 벗고 벼슬에 나아가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하려 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생각컨데, 자식이 태어나서 3년이  된 연후에야 부모의 품을 면하는 것이므로, 성인께서 3년의 상(喪)을 제정하여 만들어서, 비록 불초(不肖)한 자라 하더라도 이를 행하여 마치는 것입니다.

 

신은 평생 동안 신혼지봉(晨昏之奉)과 감지지양(甘旨之養)을 다하지 못하여, 자식된 직분을 많이 궐(闕)하였습니다. 지금 만약 쇠마(衰麻)를 벗고 슬픔을 무릅쓰고 벼슬에 나아가게 된다면 대절(大節)을 이미 그르치는 것이니, 장차 어떻게 성화(聖化)에 도움을 드리겠습니까? 신이 또 엎드려 진지(傳旨)를 들으니, 가까운 시일(時日)에 순행(巡幸)하심을 당하여 경성(京城)을 유수(留守)하게 하신다 하니, 신은 더욱더 두렵고 황공합니다.

 

옛날 한(漢)나라 고조(高祖)가 진희(陳豨)를 칠 때 소하(簫何)를 머무르게 하여 관중(關中)을 진정(鎭定)시켰고 당(唐)나라 태종(太宗)이 고구려(高句麗)를 정벌할때에 방현령(房玄齡)에게 명하여 장안(長安)를 지키게 하였으며, 송(宋)나라 진종(眞宗)이 단연(湍淵)을 징벌할 때에 왕단(王旦)으로 하여금 변경(汴京)을 지키게 하였으니, 이 세 사람들은 모두 당세(當世)의 굉재(宏材) 이미 석덕(碩德)인 자들이었습니다.

 

신과 같은 천지암식(淺知暗識)으로서 어찌 이 같은 대임(大任)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신이 만약 명령에 응하여 진실로 사호(絲毫)의 도움이 있을 것 같다면 몸을 버려 목숨이 끊어진다 해도 감히 사양하지 않겠으나, 지금 신이 나가면 치화(治化)에 유익함이 없고 풍교(風敎)에 누(累)만 끼치게 될 것이니, 반복하여 생각해 보아도 가(可)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데, 전하께서 신의 애통하고 간절함을 굽어 쫒으시어 권전(權典)을 도로 거두셔서, (신으로 하여금) 상제(喪制)를 마치도록 허락하여 주시면 효도(孝道)의 도리에 심히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어서(御書)를 내리시기를,

"나에게는 경이 양팔(左右手)과 같다. 대의(大義)가 이와 같으니 많은 말이 필요치 않다. 만약에 못한다면, 내가 장차 백관(百官)을 거느리고 친히 가시 기복(起復)시킬 것이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