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 상주목사 정종보의 망제위비
김포시 대곶면 약암리 산92-1

 

통정대부 상주목사 행내자시정, 전라도 도사 동래 정공 휘 종보 비명

공의 휘는 종보 자(字)는 주일(1458-1519)이며 동래 정씨 시조 휘 지원의 십육세손이다. 관직은 전라도도사를 거쳐 상주목사와 행내자시정에 이르다.

증조부 문경공 휘 흠지는 자(字) 요좌이며 증직(贈職) 자헌대부 중추원사이며 순성적덕보조공신, 대광보국숭록대부, 영의정부사 래산부원군이다.

조부 휘 창손 자 효중 호 동산(1402-1487) 시호(諡號) 충정공은 수충경절 좌익정난, 익재순성 명량경제좌리공신이며 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겸영경연사, 봉원부원군이다. 다섯임금 내리 섬겨 세번 영상에 오르고 공신록에 네번 올랐으며 성종묘정에 배향되고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조모는 정경부인 청풍군부인 청주정씨(부 승녕부소윤 정지)며 삼남사녀를 두었다. 장남은 휘 개, 차남은 휘 칭 삼남은 휘 괄이시다.

아버지 휘 괄은 자 경회 시호(諡號) 공숙공이다. 을유년, 문과등제하여 1418년 병조판서, 1485년, 좌찬성을 거쳐 경상도 관찰사로 나가 치적을 올렸으며 1492년 명나라 진하사(進賀使)로 갔다오고, 1493년에는 병조판서를 거쳐 평안도 관찰사로 나갔다. 1495년에 우의정에 오르고,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명나라에 갔다오다가 대곶면 신안리 칠가령에서 돌아가시고 약산 후록에 모셨다. 의정부 우의정 대광보국 숭록대부겸영경연, 춘추관감사 시호 공숙공, 의정부 좌의정에 제수(除授) 되었다.

어머니는 정경부인 양성이씨(부 부사 혈)이며 일남사녀를 두었다.

통정대부 휘 종보 자 주일은 1458년 세조 무인 5월7일생 1519년 중종 기묘 8월18일졸 사마시에 합격 전라도도사를 거쳐 행내자시정, 1517년 중종 12년에는 상주목사에 올랐다. 이 때는 문경공 가신지 82년, 충정공은 31년(종보 29세) 공숙공은 22년(종보 38세)의 세월이 흘렀다. 이 세분외 훈업을 세간인은 하늘의 삼태성에 비유했다.

배위숙부인은 안동김씨 1459년 세조 기묘 7월18일생, 1529년 중종 을묘 3월8일졸 공의 아들 장남은 요년, 차남은 구년이다. 휘 요년은 첨정 배완산이씨 무후이다.

휘 종보(16世) 휘 구년(17世)의 묘가 실전되어 양주에 있으리라는 구전의 실마리를 찾고자 후손 봉모, 선모, 좌모, 인풍. 인원, 인태, 인규등이 애쓰시다가 돌아가셨다. 1992년 봄에 두분의 단비를 봉설하기로  충정공 종중회에서 결의 약암리 약산 후록, 아버지 휘 괄 공숙공 영역한자락에 터잡아 모신다.

                                             1992년 5월 7일(음4월5일)

                                                                                          공십오대손 춘광거사   진은 근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