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을유창보(乙酉創譜) 단권(單卷)

서기 1585년 선조(宣祖) 18년 을유(乙酉)에 발간(發刊)됨.

임진왜란때 모두 없어지고 다만 그 등본과 서문만 전한다.

 

2. 을미보(乙未譜) 상하권(上下卷)

서기 1655년 효종(孝宗) 을미(乙未)에 발간됨.

 

3. 병신보(丙申譜) 6卷

서기 1716년 숙종(肅宗) 42년 병신(丙申)에 발간됨.

 

4. 기미대동보(己未大同譜) 16卷

1919년 기미년(己未年)에 발간함.

 

 

 

 

5. 갑술일통보(甲戌一統譜) 9卷

서기 1934년 갑술년(甲戌年)에 발간됨.

 

6. 각파보(各派譜)

병신보 서기 1716년 이후 자손(子孫)이 번창(繁昌)하여 수보(修譜)와 경비(經費)가 거액이라 159년 뒤인 1875년 고종(高宗) 12년 을해(乙亥)에 각파의 파보(派譜)가 주로 발간되게 되었다.

 

7. 신해보(辛亥譜) 5卷

서기 1971년 8월 15일 문경공파세보(文景公派世譜) 발간됨.

 

8. 봉산군파보(蓬山君派譜) 10卷

 

9. 충정공파보 발간사

 

◆ 첫째 : 世譜編纂(세보편찬)에 즈음하여

 

•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시대(現時代)는 초음(超音)을 재촉하듯 격변(激變)의 시대(時代)에 살고 있으며 앞으로 우리가 맞이해야할 세대(世代)는 물질문명(物質文明)이 고도(高度)로 발달(發達)하여 안방(安房)에서 지구촌(地球村)의 세정(世情)을 한 눈으로 살필 수 있는 문명사회(文明社會)의 개혁(改革)과 함께 우주공간(宇宙空間)을 정복(征服)할 수 있는 무한(無限)한 개혁정신(改革精神)을 가지고 있는 인간(人間)으로서 어찌 개천(開天) 이래(以來) 만고(萬古)의 억겁(億劫)에도 변(變)할 수 없는 혈통(血統)의 맥(脈)을 이어 받어 가계(家系)를 중심(中心)으로 종족(宗族)을 이루어 전승(傳承)하면서 선조(先祖)의 숭고(崇高)한 나라 사랑의 이념(理念)과 부모(父母)님에 대(對)한 효성(孝誠) 그리고 종족화애(同族和愛)하는 습속(習俗)에서 오늘을 살며 내일(來日)의 후손(後孫)들에게 인륜(人倫)의 가치관(價値觀)을 되살려 전승(傳承)해야할 우리로써는 어찌 선대(先代)를 모르고 자신(自身)의 존재(存在)함을 말할 수 있겠는가?

 

• 한편 훌륭한 선조(先祖)가 있어 위대(偉大)한 업적(業績)을 남겼다한들 그 유지(遺志)를 받들며 행실(行實)을 바로 잡지 못한다면 정녕 근원(根源)은 있으나 맥(脈)을 잇는 흐름이 없고 뿌리는 있으나 잎이 없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 문제(問題)는 선대(先代)의 위업(偉業)과 유훈(遺勳)이 담겨있는 훌륭한 사적(事蹟)이나 약사(略史)를 찾아 문헌(文獻)으로 기록(記錄) 대변(代辨) 할진데, 비록 선대(先代)의 유묵(遺墨)이 산일잔결(散逸殘缺)되어 분별(分別)하기 어렵다 할지라도 가통(家統)을 이어 오는 보첩(譜牒)이 있었기에 우리 선현(先賢)들께서 오랜 숙고(熟考) 끝에 지난 1971年 신해년(辛亥年)에 도유사(都有司) 문경공(文景公) 십구대손(十九代孫) 정연명공(鄭淵明公)을 중심(中心)으로 편찬(編纂)한 문경공파(文景公派) 세보(世譜) 전오권(全五券)를 상위(上位) 본문(本文)으로 하여 우리 충정공파(忠貞公派) 전종인(全宗人)들의 뜻을 모으고 합심혁력(合心協力)하여 세보편찬(世譜編纂) 과업(課業)에 이르게 됨을 발간사(發刊辭) 모두(冒頭)에서 밝혀 두고자 한다.

 

◆ 둘째 : 族譜(족보)가 갖는 時代的(시대적) 意義(의의)

 

• 우리의 고유(古有) 전통문화(傳統文化) 속에서 족보(族譜)가 갖는 제일(第一) 큰 목적(目的)과 의의(意義)는 “족보(族譜)”는 한 종족(宗族)의 계통(系統)을 알기 쉽게 계선적(系先的)이며 체계적(體系的)으로 나타낸 한 권(卷)의 역사책(歷史冊)으로써 동일혈족(同一血族)의 상하원류(上下原流)를 밝히고 남과 다른 혈통(血統) 관계(關係)와 종인(宗人) 의식(意識)을 상호(相互) 자각(自覺)하도록 하는 교훈적(敎訓的) 가치(價値)의 일족(一族)의 친목(親睦)을 도모(圖謀)하는데 필수적(必須的)이며 값있는 씨족사(氏族史)인 것이다.

 

• 우리 현대인(現代人)들에게 그 어느 때 보다도 필요조건(必要條件)이라 할 수 있는 씨족(氏族)의 주체의식(主體意識)인 숭조(崇祖) 사상(思想)의 정통성(正統性) 회복(回復)을 사명감(使命感)으로 하며 조상(祖上)님들의 유훈(遺訓)을 찾아 받들고 현대(現代) 사회(社會)에서 변화(變化)되어가는 경로효친(敬老孝親)을 바탕으로 한 뿌리 의식(意識)을 함양(涵養) 고취(鼓吹)시키며 하나의 산 교과서적(敎科書的) 필수(必須) 교재(敎材)로써의 족보(族譜)가 갖는 의식(意識)은 정말 크다고 할 것이며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물론(勿論) 자라나는 새 세대(世代)를 위(爲)하여서도 전통문화(傳統文化) 계승(繼承)과 함께 크게 공헌(貢獻)할 것이라 자부(自負)해 본다.

 

◆ 셋째 : 世譜(세보) 속에 담긴 忠貞公(충정공) 諱(휘) 昌孫(창손)의 主要(주요) 事蹟(사적)

 

• 충정공파종중회(忠貞公派宗中會)의 탄생(誕生)은 1963年 계묘년(癸卯年)에 동래정씨(東萊鄭氏) 14세(世)인 중시조(中始祖) 휘(諱) 창손공(昌孫公)을 정점(頂点)으로 창립(創立)한 교서랑(敎書郞) 6세(六世) 보(輔) 공파(公派)의 후예(後裔)이다.

 

• 정창손(鄭昌孫)(1402~1487) 공(公)은 조선(朝鮮) 초기(初期)의 문신(文臣)으로 자(字)는 효중(孝中), 호(號)는 동산(東山)이며 동래정씨(東萊鄭氏) 13세(世)인 자헌대부(資憲大夫) 중추원사(中樞院使)를 거쳐 영의정(領議政)에 증직(贈職)되신 시(諡) 문경공(文景公) 휘(諱) 흠지(欽之)의 넷째 아드님으로서 세종(世宗) 8年(1426)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及第)하고 세종(世宗) 29年(1447) 문과(文科) 중시(重試)에 등제(登第) 한 후 조선조(朝鮮朝)의 오대조(五代朝)에서 다섯 분의 임금님을 섬기시며 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世宗實錄), 치평요람(治平要覽) 등의 편찬(編纂)에 참여(參與)하시고 세 번의 영상(領相)에 올라 삼위수상(三爲首相)하고 좌익(左翼), 익대(翊戴), 좌리(佐理), 공신등(功臣等), 삼훈공신(三勳功臣)에 책훈(策勳) 되고, 봉원부원군(蓬原府院君)에 승봉(陞封) 되시었으며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 되고 현재(現在)는 성종묘정(成宗廟庭) 공신당(功臣堂)에 배향(配享)되신 동래정문(東萊鄭門)의 열일곱 분의 정승(政丞) 중(中)에서 첫 번째 영상(領相)을 역임(歷任)하신 역사(歷史) 속의  큰 어른이다.

 

• 공(公)께서는 돌아가신 후(後)에도 나라의 임금님으로부터 특전(特典)의 작위(爵位)를 받으시니 그 첫째가 “불천지위(不遷之位)”이고, 둘째가 “부조지전(不祧之典)”의 은전(恩典)이시다.

 

• 상기(上記) 적시(摘示)한 특전[特典:은전(恩典)]의 역사적(歷史的) 배경(背景)과 그 의의(意義)를 순응경모(順應敬慕)하기 위하여 지난 1994年 갑술년(甲戌年)에 경기도(京畿道)로부터 지방문화재(地方文化財) 제85호(號)로 지정(指定) 받아 공(公)의 신위[神位:위패(位牌)]와 존영(尊影)을 봉안(奉安)한 사당[祠堂:충정사(忠貞祠)]과 재실[齋室:동산재(東山齋)]을 문화재(文化財) 형태(形態)의 고가(古家) 단청(丹靑) 건물(建物)로 2005年 을유년(乙酉年)에 대대적(大大的)인 성역화(聖域化) 사업(事業)으로 비각(碑閣)과 신도비(神道碑) 건립(建竪)와 함께 건립(建立)되어 공(公)께서 생전(生前)에 이룩한 공훈(功勳)과 유지(遺志)를 이어갈 자존(自存)의 기반(基盤)을 다져 동래정문(東萊鄭門)의 후예(後裔)로써의 그 본분(本分)을 다하고자 다짐해본다.

 

◆ 넷째 : 族譜(족보)를 쉽게 理解(이해)하는 協力的(협력적) 努力(노력)

 

• 족보(族譜)가 갖는 가치(價値)는 선조(先祖)들의 사적(事跡)을 기록(記錄)한 일종(一種)의 문헌(文獻)인 동시(同時)에 동일혈족(同一血族)의 원류(原流)에서부터 정확(正確)한 혈통관계(血統關係)를 사실적(事實的)인 근거(根據)에 의(依)하여 상호(相互) 자각(自覺)하고 존중(尊重)하며 화친(和親)을 도모하는데 필요(必要)한 고증자료(考證資料)이므로 그 기술(記述)에 있어 객관적(客觀的)인 기술(記述)과 정확성(正確性)이 담보 한다는데 최선(最善)의 노력(努力)을 경주(傾注)하였다.

 

• 현세(現世) 자라나는 우리 후배(後輩)들은 세계사(世界史)나 외국(外國)의 위인(偉人)들에 대해는 기억(記憶)하면서 자기(自己)가 속(屬)해있는 가계(家系)나 조상(祖上)님들이 이루어 놓은 중요(重要)한 가보적(家寶的) 사적(史蹟)에 관(關)하여는 소홀한 경향이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 최근(最近)에 많은 가문(家門)에서 선조(先祖)들의 행장(行狀)을 기록(記錄)한 문헌(文獻)이나 족보(族譜)가 간행(刊行)되고 있으나 일반적(一般的)으로 한자(漢字)로 기록(記錄)되어 있어 조상(祖上)님들의 행장(行狀)을 올바르게 전승(傳承) 시킬 수 없는 불미(不美)한 결과(缺課)를 초래(招來)하고 있는 현실(現實)을 감안(勘案)하여 충정공(忠貞公) 세보(世譜)의 편찬(編纂)은 위에서 적시(摘示)한 문제(問題) 해결(解決)을 위(爲)하여 구보(舊譜)의 전거(典據) 요령(要領)을 철저하게 국역화(國譯化)하여 필요(必要)한 문장(文章)의 해설(解說)을 첨가함으로서 새 세대(世代)들의 족보(族譜) 이해(理解)에 도움을 주고 있다.

 

• 활자시대(活字時代)에서 영상시대(映像時代)로 변화(變化)되는 새 세대(世代)들에게 빠르게 이해(理解)하고 선조(先祖)의 뿌리찾기를 다각적(多角的)으로 찾아볼 수 있도록 “컴퓨터를 활용(活用)한 ” 인터넷 족보“를 구축하고 “각(各) 종인(宗人)들의 개개인(個個人)의 특성(特性)을 감안하여 ”홈페이지“ 제작 등으로 ”수보작업(修補作業) “에 다양성(多樣性)을 부여하여 우리 전종인(全宗人) 가족(家族)들이 숭조보은(崇祖報恩)하는 좋은 지침서(指針書)가 되기를 기원(祈願)해 본다.

 

◆ 다섯째 : 世譜編纂(세보편찬)에 함께 參與(참여)해 주신 編纂委員(편찬위원) 諸位(제위)께

 

• 이번 충정공파(忠貞公派) 세보편찬(世譜編纂) 사업(事業)은 오랜 숙원사업(宿願事業)의 하나로써 불비(不備)한 여건(與件) 속에서 시작(始作)은 했지만 우리 전종현(全宗賢) 가족(家族)들의 적극적(積極的)인 협력(協力)과 각(各) 지파(支派) 문중(門中)의 유사(有司)님들 그리고 편찬과정(編纂課程)의 편집(編輯), 교정(校正), 감수(監修) 작업(作業)에 직접(直接) 참여(參與) 수고(手告)하여 주신 각(各) 위원(委員) 제위(諸位)께 진심(眞心)으로 감사(感謝)드리며 경의(敬意)를 표(表) 합니다.

 

                 西紀 二00七年 정해년(丁亥年) 六月    日

                                                忠貞公派宗中會 十六代孫  會長  鄭鶴謨  謹書

                                                충정공파종중회 십육대손  회장  정학모  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