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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작성자 ys관리자
작성일 2015-12-26 (토)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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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122.xxx.82
東萊鄭氏族譜後跋(후발)
옛적 문충공 구양수 가 세보(世譜)를 만들고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성의 유래를 알지 못하는 것을 꾸짖어 금수만도 못하다고 까지 했다, 후일 평하는 이들이 이르기를 구양씨의 득성이 무릇 몇 해이며 그간의 문학지사가 또한 많았는데 문충공이 처음으로 족보를 만들고 세상 사람들을 꾸짖은 그 말은 타당하다고 할 수 없다,무릇 문충공이 꾸짖은 말은 족보를 소중하게 여겨야 된다 는 뜻에서 진실로 나왔거늘,족보가 늦게 출현함을 꾸짖었다고 평하는 자는 문충공의 뜻 깊은 한 구절을 볼지어다.
우리 종족이 족보를 만든 것은 이와는 다르다,지난 만력124)을유년(1585,선조 18)에 인의공 흥선(興善)께서 임당공께 여쭙고 상의하여 족보를 처음으로 편수(編修)하였고 그 후 70년이 지난 을미년(1655,효종 6)에 참판공 양필께서 경주부윤으로 재임시 대보를 속간하였으며 지금 경주공 필도(必東)께서 또 60년이 지난 을미년(1715,숙종 41)이 고을 경주에 부임하여 다시 계속하여 신보(新譜)를 편수하였다,무릇 전후로 출간한 것이 세 번이요 그 간격은 육십년,칠십년으로 계속해서 편수했다고 할 수  있으니,문충공에서 비롯된 구양ㅆ의 세보와 비교한다면 너무나도 차원이 다르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또한 옛 족보의 서문과 발문을 상고해 보면125)을유초보는 매우 간략하여 대략 5대조 이하 자손에 미쳤고,을미중보는 2권으로 개정하여 규모가 비로서 넓고 절목이 더욱 상세하지만 그래도 소략(疏略)한 곳,누락된 곳,잘못된 곳이 있다, 이번에 편수한 족보는 경주공(諱 必東)휘,필동의 보학에 관한 조예가 옛날 육보(肉譜)126)라고 칭하던 자모다 자못 나았기 때문에,또 육,칠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왔고 지금에 이르러 일을 맡아 처리하여 완성하였기 때문에 그 두루 갖춘 바가 치밀하여 다시 흠될 것이 없다.
문충공의 세보는 이와 비교하여 볼 때 어떠한지 모르겠다.무릇 전후로 족보의 간행이 모두 경주에서 이루어졌고 간행연도가 별이 하늘에서 운행하는 것과 같이 햇수가 주갑(60년)으로 또한 갇아서 천시(天時)와 인사(人事)가 참으로 서로 부합하니 이 얼마나 기이한 일인가!
 
불초한 내가 경주공(휘 필동)과 더불어 대사구(大司寇)127)내산군(萊山君)128)의 후손으로 단문복(袒免服)을 입지 않은 친족으로서 이미 5세로 벌어졌으나129)사람이 바뀌고 세대가 멀어져 저 길손 같은 탄식의 느낌을 면할 수 있었음은 실로 우리 종족이 보첩을 명확하게 한 데 힘입은 것이다.
이번 신보(新譜)를 간행할 즈음 불초한 내가 역시 황송하게도 울주 수령이 되었다.울주는 경주와 서로 접해 있는데도,되돌아 보건대,어리석은 몸이 능히 일을 도와드리지 못하고 감히 한마디의 찬사도 못하여 송구스럽더니 이제 발문(跋文)을 부탁받고 또 분수에 넘친다고 사양만 한다면 더욱 그 허물을 스스로 씻을수 없을 것이므로 간략히 후서(後序)130)중에 나의 뜻을 밝혀 공손히 책 끝에 기록한다,131)
후손 통훈대부 행울산도호부사132) 정동후133)鄭東後)가 삼가 발문을 쓰다.
 
          여기서  通訓大夫통훈대부는 正三品계이고
                     都護府使도호부사는 從三品계이다
 
                     송애공은 22世이고 雲吉字의 後孫이다
                     경주공,필동 23世이고 啓咸字의 後孫이다
2018년도 장학금 지급을 위한 장학생 선발 신청 안내 관리자 신경미 과장 2018-01-22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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