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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무상무
작성일 2011-03-23 (수)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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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220.xxx.59
창손공의 죽음을 슬퍼하다

영의정 정창손 공의 죽음을 슬퍼하다

輓 領相鄭公昌孫

斷斷無他一介臣堂堂善保百年身勳名獜閣羣公冠

華冑蓬山幾葉春汗簡漫留淸素節岩廊空想老成人

三郞能世增弘化餘慶須知德照隣

佔畢齋金宗直.

전일하여 딴 마음 없고

절개 있는 한 신하

당당(堂堂)하게 잘 간직했네,

자기의 몸.

공훈과 명성은 기린각에서도

여러 공(公)의 으뜸이었네.

빛나는 명문(名門) 봉산(蓬山)의

몇 대 자손인가.

대쪽에는 부질없이

맑고 깨끗한 절개만 남아

나라에선 늙고 노련한 분만

부질없이 생각하리.

삼랑(三郞)이 능히 대를 이어

덕화(德化)를 더 널리 펴리니

나머지 경사는 모름지기 알리라,

덕이 이웃까지 비출 것을.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9) 병인상서문(丙寅上書文)-戊寅年 十二月 十二日(丙寅)

上書曰臣於前日仰陳早抱請終喪制今伏承承旨臣曹錫親傳 上旨不允所請深增驚懼岡知所措胃瀆天威再

陳悃愊伏望聖慈伏念臣庸遇迂拙惟以文墨少技謬蒙 列聖之知遇致位通顯曾無才效歲在癸酉靖難之初特

蒙 殿下之薦拔擢臣爲銓曹之長自是感激思効微勞及至 殿下龍飛之秋賜號功臣擢置廊廟寵渥踰涯 殿

下卵翼之思昊天岡極庶竭駑鈍仰答生成略無絲毫之補俯仰有愧古人云無德而富貴謂之不祥臣德薄位重盛

滿已極天降酷罰禍延慈母攀呼莫及痛切心腸方居苫廬冀終喪制不意忍降 綸音特令卽吉復長台班至遣近

臣訓諭丁寧 聖恩至渥臣豈不欲欽承 聖訓釋服就職以效犬馬之勞哉但念子生三年然後免於父母之懷是

以聖人制爲三年之喪雖不肖者使之企而及之臣平生晨昏之奉甘旨之養有所未盡多闕子職今若徑釋衰麻冒

哀就職則大節已虧矣將何以裨贊 聖化乎臣又伏聞 傳旨近當巡幸使之留守京城臣充切衿惶昔漢高祖之

討陳豨也留蕭何鎭開中唐太宗之伐高麗也命房玄齡守長安宋眞宗之伐澶淵也使王旦守汴京此三人者皆當

世之宏材碩德者也如臣之淺知暗識豈能堪此大任哉臣若應 命苟有絲毫裨益捐軀殞命所不敢辭今臣之出

無益治化有累風敎反復思之無一而可伏望 殿下俯循哀懇追收權典許令終制孝理幸甚 御書曰予之於卿

猶左右手大義如此不必多言若不得則予將率百官親往起復

12일병인(丙寅) 정 창손(鄭昌孫)이 상서(上書)하기를,

"신이 전일에 마음 속에 품은 바를 우러러 진술하여 상제(喪制)를 마칠 것을 청하였는데, 지금 승지(承旨) 신(臣) 조석문(曺錫文)이 친히 성상의 교지(敎旨)를 전하는 것을 엎드려 받으니, 청(請)한 바를 윤허하지 않으셨으므로 더욱 놀랍고 두려워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천위(天威)를 무릅쓰고 간절한 마음을 다시 진술하며 엎드려 성상의 자혜(慈惠)를 바랍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신은 용우(庸愚)․우졸(迂拙)한데, 다만 문묵(文墨)의 조그마한 재주로 그릇되게 열성(列聖)의 지우(知遇)를 입어 관위(官位)가 통현(通顯)에 이르렀으나, 일찌기 재우의 재효(才效)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계유년(癸酉年) 정난(靖難) 초에 특별히 전하의 천발(薦拔)을 입어, 신이 전조(銓曹)의 장(長)으로 탁용(擢用)되었으니 스스로 감격하여 미로(微勞)를 다할 것을 생각하였는데, 전하께서 왕위에 오르실 때에 이르러 공신(功臣)의 호(號)를 내려 주시고 낭묘(廊廟)에 발탁하여 주셨으니, 총애(寵愛)가 우악(優渥)하여 분수에 넘치고, 전하의 난익지은(卵翼之恩)이 하늘같이 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노둔(駑鈍)한 재주를 다하여 생성(生成)의 은혜에 보답코자 하였는데, 사호(絲毫)의 도움도 전연 없으니, 하늘을 우러러 보나 세상을 굽어보나 부끄러울 뿐입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덕(德)이 없이 부(富)하고 귀(貴)한 것을 「불상(不祥)」이라 이른다.' 고 하였습니다. '신은 덕이 없고 벼슬이 중(重)하여, 「불상(不祥)이」 성만(盛滿)하기가 이미 극(極)에 달하였으므로 하늘이 혹심(酷甚)한 벌(罰)을 내려 화(禍)가 어머님께 미쳐서 슬픔(攀呼)이 이를 데 없고 애통(哀痛)함이 애(心腸)를 끊는 것 같습니다.

바야흐로 점려(苫廬)에 거쳐하여 상제(喪制)를 마치려고 하였는데, 뜻하지 않게 윤음(綸音)을 갑자기 내리시어, 특별히 길복(吉服)을 입게 하시고 다시 태반(台班)의 장(長)으로 삼으시어, 근신(近臣)을 보내셔서 훈유(訓諭)하시기를 정녕(丁寧)하게 하심에 이르렀으니, 성은(聖恩)이 지극히 우악(優渥)하십니다. 신이 어찌 성훈(聖訓)을 받들어 상복(喪服)을 벗고 벼슬에 나아가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하려 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생각컨데, 자식이 태어나서 3년이 된 연후에야 부모의 품을 면하는 것이므로, 성인께서 3년의 상(喪)을 제정하여 만들어서, 비록 불초(不肖)한 자라 하더라도 이를 행하여 마치는 것입니다.

신은 평생 동안 신혼지봉(晨昏之奉)과 감지지양(甘旨之養)을 다하지 못하여, 자식된 직분을 많이 궐(闕)하였습니다. 지금 만약 쇠마(衰麻)를 벗고 슬픔을 무릅쓰고 벼슬에 나아가게 된다면 대절(大節)을 이미 그르치는 것이니, 장차 어떻게 성화(聖化)에 도움을 드리겠습니까? 신이 또 엎드려 진지(傳旨)를 들으니, 가까운 시일(時日)에 순행(巡幸)하심을 당하여 경성(京城)을 유수(留守)하게 하신다 하니, 신은 더욱더 두렵고 황공합니다.

옛날 한(漢)나라 고조(高祖)가 진희(陳豨)를 칠 때 소하(簫何)를 머무르게 하여 관중(關中)을 진정(鎭定)시켰고 당(唐)나라 태종(太宗)이 고구려(高句麗)를 정벌할때에 방현령(房玄齡)에게 명하여 장안(長安)를 지키게 하였으며, 송(宋)나라 진종(眞宗)이 단연(湍淵)을 징벌할 때에 왕단(王旦)으로 하여금 변경(汴京)을 지키게 하였으니, 이 세 사람들은 모두 당세(當世)의 굉재(宏材) 이미 석덕(碩德)인 자들이었습니다.

신과 같은 천지암식(淺知暗識)으로서 어찌 이 같은 대임(大任)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신이 만약 명령에 응하여 진실로 사호(絲毫)의 도움이 있을 것 같다면 몸을 버려 목숨이 끊어진다 해도 감히 사양하지 않겠으나, 지금 신이 나가면 치화(治化)에 유익함이 없고 풍교(風敎)에 누(累)만 끼치게 될 것이니, 반복하여 생각해 보아도 가(可)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데, 전하께서 신의 애통하고 간절함을 굽어 쫒으시어 권전(權典)을 도로 거두셔서, (신으로 하여금) 상제(喪制)를 마치도록 허락하여 주시면 효도(孝道)의 도리에 심히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어서(御書)를 내리시기를,

"나에게는 경이 양팔(左右手)과 같다. 대의(大義)가 이와 같으니 많은 말이 필요치 않다. 만약에 못한다면, 내가 장차 백관(百官)을 거느리고 친히 가시 기복(起復)시킬 것이다." 하였다.

10) 임신상서문(壬申上書文)-戊寅年 十二月 十八日(壬申)

上言曰孝爲百行之源未有不孝於親而能忠於君者也傳曰求忠臣於孝子之門者以此也臣以無狀謬蒙 聖恩

特令起復仍除首相臣聞 命兢惶措身無地再瀆 天威請終喪制未蒙兪允進退維谷罔知所爲臣竊念起復小

臣者盖以鑾與遠狩將欲使臣留守京都也其任至重此豈臣愚所能堪耶然聖訓深切天意莫回意未固辭臣反復

思之臣本以庸陋之質濫叨台司深慙伴食之誚常懷覆餗之憂今若忘哀冒籠釋衰卽吉則是不孝於親而行義先

虧矣 殿下將安用之况今權停巡幸之擧豈宜一日冒處台班以累聖治乎伏望 殿下察臣茹哀憐臣懇迫俾終

喪制 上允之.

□.임신 상서문

世祖四年(戊寅/1458) 十二月 十八日 壬申에 정창손이 다시 상언(上言)하기를 "효도(孝道)는 백행(百行)의 근본이니 부모에게 효도하지 못하면 임금에게도 능히 충성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전(傳)에 이르기를 충신(忠臣)은 효자의 가문(家門)에서 구(求)하라, 고 한것도 이 때문입니다. 신은 무상(無狀)한 몸으로 성은(聖恩)을 외람되게 입었는데 특별히 기복(起復)하게 하시고 이어서 수상(首相)에 제수하셨으니 신은 명령을 듣고 두렵고 황송하여 몸둘 바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두번씩이나 천위(天威)를 무릅쓰고 상제(喪制)를 마칠 것을 청하였으나, 유윤(兪允)을 입지 못하여 이럴수도 없고 저럴수도 없어서 어찌할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신이 그윽이 생각컨대, 소신(小臣)을 기복시키시는 것은 대게 난여(鑾與)를 타고 멀리 순행(巡幸)하심으로 인하여, 장차 신으로 하여금 경도(京都)를 유수(留守)하게 하고자 하심이나, 그 임무가 지중(之重)하니, 이 어찌 어리석은 신이 감당할 수 있는 바이겠습니까? 그러나, 성훈(聖訓)이 매우 간절하시고 천의(天意)를 돌리지 않으셔서 마침내 굳이 사양하지 못하였습니다.

신이 반복하여 생각해보니, 신은 본래 용렬(傭劣)하고 보잘 것 없는 자질(資質)로써 외람되게 태사(台司)에 머물러 있어서 무능하다는 꾸지람 伴食之誚을 매우 부끄럽게 여기고, 재상의 소임을 감당하지 못하는 근심을 항상 품고 있었습니다. 지금 만약 슬픔를 잊고 총애(寵愛)를 탐(貪)하여 쇠복(衰服)을 벗고 길복(吉服)을 입는다면, 이는 부모에게 불효(不孝)하여 행의(行義)를 먼저 그르치는 것이니 전하께서 어찌 쓰시겠습니까?

하물며, 지금 순행(巡幸)의 거등을 임시로 정지하셨으니, 어찌 하루인들 외람되게 태반(台班)에 처(處)하여 성치(聖治)에 누(累)를 끼칠 수 있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 신의 여애(茹哀)함을 살피시고 간절(懇切)한 정(情)을 불쌍히 여기셔서 신으로 하여금 상제(喪制)를 마치게 하여 주소서." 하니, 임금이 윤허하였다.

註:1458년 戊寅 世祖4년 忠貞公께서 母親喪을 당해 廬墓하고 있을 때 世祖께서 領議政에 대배(大拜) 하시매 위와 같이 여러 차례 상서문을 올려 윤허를 받으셨다. 그 內容을 살펴보니 孝心과 忠心이 가득함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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